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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위인

조선 위인 여성 예술가 신사임당 배워보자.

by 온맘 다해 다 퍼주는 비전나누미 2022. 9.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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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여성 예술가 신사임당 업적 살펴보자.

신사임당은 조선 중기의 문인이며, 화가, 작가, 시인, 예술가이다. 조선 시대 성리학자 율곡 이이의 어머니이며, 5만원 지폐의 주인공이다. 그녀는 유교 문화가 지배하던 조선시대에 태어나서, 자애롭고 강단 있는 성품으로 자녀를 양육하였고, 예술가로서 재능을 발휘한 슬기로운 여성이다. 위인 신사임당은 누구인지 자세히 알아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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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인 신사임당 어린 시절 알아보자.

신사임당은 1504년 강원도 강릉에서 출생하였고 딸 다섯 중 둘째 딸이었다. 사임당이란 중국 주나라 문왕의 어머니인 태임을 스승으로 본받으려고 지은 호이다. 아버지는 신명화는 진사시에 합격하여 진사가 되었다. 1519년 Gimyosahwa(기묘사화,己卯士禍)가 일어났는데, 신명화는 나흘이나 옥고를 치렀고, 그 후에 관직을 내려놓고 강릉으로 내려왔다. 어머니 이씨는 소신있게 자녀 교육을 하였고, 효행을 다하였으며, 죽은 남편에게 대한 정절을 지켜 열녀 표창을 받았다.

 

신사임당의 아버지는 여자도 학문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하고 딸들에게 성리학과 그림을 그리는 법을 가르쳤다. 사임당은 글을 일찍 깨우쳤고, 기억력이 뛰어났고, 유교 경전과 기본 서적들을 빠르게 익혔다. 어려서부터 그림과 예술에 놀라운 재능이 있었고, 자수와 바느질 솜씨도 특별했다. 외할아버지는 그녀에게 그림 재능이 있음을 알아보았고, 7살부터 정식으로 그림을 배우게 하였다. 그녀는 성리학적 지식과 역사 지식, 고전 지식이 해박하여 총애를 받았고, 바느질 솜씨와 음식 솜씨도 좋았다. 가족들과 주변인들은 그녀가 그린 그림과 글씨를 보며 감탄하였다.

 

신사임당 결혼 및 자녀 교육 배워보자.

신사임당은 십구세에 선비 이원수와 결혼을 하였다. 그녀는 결혼 후에 강릉과 서울을 오가며 두 집안의 살림을 도맡을 수밖에 없었다. 그 이유는 홀로 되신 친정어머니를 돌보기 위해서였다. 그녀는 4남 3녀를 낳았고, 율곡 이이는 셋째 아들이다. 그녀는 남녀 차별하지 않고 자식들에게 글을 가르치고 공부를 시켰다. 그녀는 자녀들의 재능을 최대한 살려주었고, 스스로 모범을 보이면서 시를 짓고 그림 그리는 일을 하였다. 첫째 딸 이매창은 어머니처럼 그림을 그리는 예술가가 되었고, 셋째 아들 율곡 이이는 조선을 대표하는 학자이자 정치인으로 성장하게 되었다.

 

 

 

 

 

예술가 신사임당 예술성 알아보자.

신사임당은 두 집안의 살림을 도맡은 바쁜 와중에서도 꾸준하게 그림을 그렸다. 조선시대에는 여자들이 자신의 뜻을 펼칠수 있는 기회가 적었고, 결혼과 함께 자신의 재능을 사장해야만 했던 시절이었지만, 그녀는 이런 사회적인 상황에서 자유롭게 재능을 발휘하였다.

 

그녀의 예술성을 발휘할 수 있는 날이 드디어 왔다. 어느 잔칫날에 한 여자가 빌려온 치마에 음식 국물이 튀어서 당황해 하자, 그녀는 붓과 먹을 준비해서 치마에 포도송이 그림을 그려 치마를 멋진 치마로 바꾸었다. 그녀는 작은 생명에 관심을 갖았으며, 주변에서 볼 수 있는 풀과 벌레들을 많이 그렸고, 눈앞에 생생하게 살아있는 듯하게 그려냈다.

위인 예술가 신사임당 화폐의 주인공 되었다.

신사임당은 봉건 시대에 여성이라는 제약 속에서도 자기 개발에 힘써서 시문, 글씨, 그림 등 조선시대 여성 예술가로서의 삶을 살았다. 오늘날 현모양처의 상징이 되었고, 율곡 이이를 기른 훌륭한 어머니로 기억되어 많은 사람들의 존경을 받고 있다. 그녀는 화폐의 주인공이 되었는데, 어머니와 아들 율곡 이이가 동시에 화폐의 주인공이 된 것이다. 그녀는 현모양처의 상징뿐 아니라, 훌륭한 여성 작가요 시인이요 예술가로 평가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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