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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위인

조선 위인 단원 김홍도 그림 세계 배워보자.

by 온맘 다해 다 퍼주는 비전나누미 2022. 9.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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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속화가 김홍도 생애 및 그림 배워보자.

김홍도는 조선 후기 산수화, 풍속화를 많이 그린 풍속화가이다. 그는 풍속화뿐 아니라 여러 가지 회화 영역에서 재능을 발휘하였고, 어떤 소재도 수준 높은 차원으로 그려내었다. 그는 어떤 상황의 찰나를 잘 포착하여서 그림 속에 담았다. 그가 그린 그림은 현실과 비슷해서 사람들의 입을 다물지 못하게 하였고, 감동을 주었다. 화가 김홍도의 그림 세계 배워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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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인 김홍도 어린 시절 찾아보자.

김홍도는 1745년 경기도 안산에서 아버지 김석무의 무녀독남으로 출생했다. 그의 호인 "단원"은 명나라의 문인화가 단원 이유방의 호를 따서 만들었다. 단원의 집안은 대대로 무관을 지낸 집안이었지만, 할아버지 김수성 대부터는 관직에 진출하지 못했다. 어린 시절에 관해서는 별로 알려진 것이 없다. 그의 집안에는 화원 출신이 없었지만, 그는 어릴 때부터 강세황의 집에 드나들면서 그림 그리는 법을 배웠다. 강세황은 서화와 시에 뛰어났고, 김홍도에게 많은 영향을 주었다. 강세황은 그가 도화서에 들어갈 수 있도록 추천하였다.

위인 김홍도 정조와의 관계 알아보자.

김홍도는 정조로부터 관심과 배려를 많이 받았다. 그는 영조 말년에 정조의 초상화를 그렸는데, 이것이 계기가 되어 정조는 그림에 관한 일은 홍도를 시키게 되었다. 정조는 백성들의 생활을 그려오게 했고, 그가 관내에서 그림을 그려 올릴 때마다 칭찬을 받았다. 정조는 그의 재능을 알아보고 신뢰하였고, 그의 그림을 보고 백성들의 삶을 더 잘 알게 되었다. 1789년에는 일본 지도를 그려오라는 밀명을 받고 쓰시마섬으로 건너가 일본 지도를 그려왔다. 1790년 정조의 아버지 사도세자 용주사 대웅전에 불화 작업을 감독하였다.

풍속화가 김홍도 그림 세계 살펴보자.

김홍도는 많은 그림을 그렸고, 당대 최고의 화가였다. 그가 문학, 음악, 철학 등에도 소양을 닦아서 폭넓은 사람들과 교제하였는데, 이는 작품세계에 영향을 주었다. 그의 작품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그림들은 30대에 그린 것이 많다. <행려풍속도> 는 8폭의 병풍에 섬세하게 농어촌의 생활상을 그려 넣었는데, 풍속화에 관심을 가진 초기 작품이다.

 

 

 

 

 

<풍속화첩> 은 인물들의 묘사기법과 필치가 30대 후반의 작품으로 보인다. 서당, 타작, 기와 이기, 어장, 활쏘기, 무동, 논갈이 등 25점으로 꾸며진 화첩이다. 40세에는 <단원도> 를 그렸고, 그 이후 <삼세여래후불탱화>, <오륜행실도> 의 삽화를 그렸다. 그는 50세 이후 관직에서 파직된 후 활발한 작품 활동을 함으로써, 더욱 원숙한 작품을 보여주었다.

 

그의 그림의 특징은 매우 사실적으로 묘사하고, 배경을 은은한 먹으로 강조했다는 점이다. 한국적인 풍토 감각을 독특한 개성으로 잘 표현하고 있다. 그는 영조, 정조 시대에 조선의 화풍에 커다란 변화를 일으켰다. 독창적 그림을 그렸고, 일반 서민들의 생활을 그렸으며, 서양 화법을 과감히 도입해서 채색의 농담으로 형체의 원근과 고저를 표현하였다. 그의 풍속화에는 익살이 숨겨져 있고, 내용 전달이 명확하며 미소를 띠게 만든다.

화가 김홍도 업적 평가해보자.

김홍도는 왕으로부터 서민까지 사랑을 받은 화가 이다. 그는 그 이전 화가들이 그리지 않은 민중들의 삶을 그린 풍속화를 많이 남겼다. 이것은 당대 놀라운 전환이었다. 그의 작품은 한국교과서에 실려있고, 그의 작품을 모르는 한국인이 없다. 그는 한반도 전통 화단의 정수라 평가받고 있는데, 그는 불화, 동물화, 산수화, 화조화, 인물화 등 모든 장르에서 완벽한 화풍을 보여주고 있다. 김홍도는 유일하게 다양한 장르를 소화한 조선시대 화가이며 위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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