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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위인

어린이 인권운동가 소파 방정환 알아보자.

by 온맘 다해 다 퍼주는 비전나누미 2022. 12.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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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를 사랑한 소파 방정환 알아보자.

방정환은 독립운동가이자 사회운동가, 아동문화운동가이며, 한국에서 '어린이'라는 말을 처음 사용한 사람으로, 어린이날을 만든 사람이다. 그는 아동잡지 <어린이>를 창간한 아동문학가로서, 당시에 유교 도덕에 얽매여 살아가고 있던 어린이들을 어린이 감성으로 해방시키려고 애썼다. 나라의 미래는 어린이에게 있다고 생각하며 평생 어린이를 사랑한 방정환 그의 일생을 알아보고자 한다.

방정환 출생 및 어린시절

방정환은 1899년 한성부 야주개 마을에서 방경수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할아버지에게 한문을 배우며, 4대가 함께 살며 어른들의 사랑을 받고 자랐다. 아버지의 사업실패로 가난하게 살았고, 어머니가 일찍 돌아가셔서 새어머니가 들어왔으나, 그는 글 쓰고 그림 그리는 일에 몰두하였다.

 

1905년에 숙부 방흥수를 따라 신식공부를 하는 보성소학교를 방문하였고, 김중환 교장선생님을 만나 학교에 입학하고 싶어서 댕기와 머리를 짧게 깎았다. 이를 보고 할아버지 방한용은 화가 났지만, 자초지종을 듣고 신식학교 다니는 것을 허락하였다. 보성소학교 유치반에 입학한 그는 10살에 '소년입지회'를 조직하였고, 토론회, 연설회, 동화 구연을 하였다.

방정환 문학 등단하다.

1913년에 관립 미동보통학교를 졸업하고, 선린상업학교에 입학하였으나 그가 하고 싶은 공부가 아니기에 2년 만에 중퇴하였다. 그는 집안 형편의 어려움을 알았지만, 금융 노동자가 아닌 아동문학가가 되고 싶었던 것이다. 1917년 최남선이 펴낸 잡지 <청춘>에 글을 보내 당선되어 등단하였다.

 

1916년 조선총독부 토지조사국에서 서류 필사 업무를 했고, 사직 후에는 천도교 기관에서 일하였다. 1917년 천도교 제3대 교주인 의암 손병희의 3녀 손용화와 중매결혼했으며, '청년구락부'를 조직하여 5년간 어린이 운동을 하였다. 1918년 장인 손병희의 권유로 보성전문학교 법과에 입학하였다.

방정환 독립운동하다.

1919년 3.1 운동이 일어나자 조선독립신문을 인쇄하다가 일본 경찰에게 체포되어 고문을 받았으나 증거 불충분으로 일주일 만에 풀려났고 그 이후 끊임없는 감시를 받게 되었다. 1920년 일본 도요대학 철학과에 입학하여 아동문학과 아동심리학을 공부하였다.

방정환 어린이날 만들다.

1920년에서 1923년 사이에는 천도교 잡지인 <개벽>에 계급투쟁을 주장하는 사회주의 색채가 강한 풍자기, 수필, 번역동화 등을 발표하였다. <개벽> 3호에 번역 동시 <어린이 노래:불 켜는 이>를 발표했는데, 이 글에 어린이라는 말을 처음 사용하였다. 1922년에는 번역동화집 <사랑의 선물>을 출판하였는데, 이는 그가 출판한 유일한 단행본이며, 조선 어린이들이 읽기 좋도록 번안 동화 10편이 실렸다.

 

1922년 5월 1일 어린이날 행사를 주최하였다. 그가 노동절에 어린이날 행사를 개최한 이유는 어린이들이 억압받고 아동노동을 하고 있어서 이로부터 해방시키고자 함이었다. 1923년에는 어린이 운동단체 '색동회'를 조직하고, 월간 <어린이>를 창간하여 사상 유례없는 인기를 누렸다. 또한 세계 20여 나라가 참가하는 '세계아동예술전람회'를 개최하기도 하였다. 1927년 '조선소년연합회' 위원장을 역임했고, 추리소설 <칠칠단의 비밀> 등을 집필하였다. 이야기 재주도 뛰어나서 수많은 곳에 동화구연하러 다니기까지 했다.

방정환 평가

방정환은 일제의 혹독한 탄압과 극심한 스트레스로 1931년 33세의 젊은 나이로 요절하였다. 그는 마지막까지 어린이를 위하여 좀 더 힘쓰지 못한 것에 아쉬움을 남기면서 떠났다. 그는 어린이들이 미래 사회의 주역으로 좋은 환경에서 잘 자라나기를 바랬다. 그는 개작과 번안뿐 아니라, 어린이 잡지를 통해 아동문학가의 발굴, 육성에 심혈을 기울였고, 어린이의 동심 회복을 위해 많은 활동을 하였고, 민족문화 발전과 독립운동에 이바지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방정환의 호는 소파이다. 그는 어린이들 가슴에 작은 파도를 일으켰지만, 이 파도는 날이 갈수록 커지고 나중에는 큰 파도가 되어 출렁일 것이라는 의지를 가지고 있었다. 시대와 사회의 약자였던 어린이에 대한 인식을 바꾸고자 한 그의 정신은 100년이 지난 지금도 커다란 물결이 되어 출렁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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