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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위인

조선 위인 지리학자 김정호 업적 알아보자.

by 온맘 다해 다 퍼주는 비전나누미 2022. 9.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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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위인 지리학자 김정호 누구인지 배워보자.

김정호는 조선 후기의 지리학자이자 지도학자이다. 그는 지도를 널리 수집하고 찾아보면서, 조선시대 가장 많은 지도와 지리지를 제작하고 편찬한 학자이다. 그의 가장 큰 업적은 목판에 정밀하게 직접 그림을 그리고 인쇄한 대동여지도 22첩이다. 조선시대 국토 정보를 효율적으로 대중화시킨 김정호의 업적을 배워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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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인 김정호 생애 알아보자.

김정호는 1804년 무렵 황해도 토산에서 태어났는데, 집안 형편이 넉넉지 않은 중인 출신으로 추정된다. 한양으로 이주한 후에는 남대문 밖 만재리에 살았다. 그는 일찍부터 지도학에 취미가 있었고, 재주가 많았다. 야사에 따르면, 그는 어릴 때 산을 헤매다가 선인에게 산을 함부로 들어왔다고 호통을 당했는데, 선인은 그에게 '고산자'라는 이름을 지어주었다고 한다. 고산자는 산의 뿌리를 찾는 자라는 뜻이다.

김정호 지도 제작 업적 살펴보자.

김정호는 신분이 높지 않았지만 주변 사람들의 도움으로 지도학 자료들을 접근할 수 있었다. 최한기는 그가 다양한 지도들을 보고 만들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그는 수많은 자료를 찾아보고, 기존의 여러 지도들을 종합적으로 정리하였다. 관리 신헌은 궁궐에 있는 지리지를 볼 수 있도록 도와주었고, 그는 원하는 지도를 만들 수 있었다. 그는 끊임없이 정보를 수집하고 비교하고 검토하여서, 자신이 만든 지도와 지리지의 부족함을 계속해서 개선하였다.

 

1834년 동여도지, 청구도를 편찬하였고, 1851년 여도비지를 편찬하였으며, 1856년 동여도를 편찬하였다. 1861년 앞서 만든 지도를 보완하여 대동여지도를 편찬하였고, 대동지지를 편찬하였다. 대동여지도 크기는 높이 7미터, 가로 3미터 반으로 크기가 크고 여러 판으로 나누어져 있다. 대동여지도는 10리마다 표시를 하였고, 지방에 대하여 정보들을 넣어서 조선 생활상을 알 수 있게 하는 훌륭한 정보지 역할을 하였다.

위인 김정호 과장된 오해 알아보자.

 

 

 

 

 

김정호는 지도를 제작하고 지리를 연구하기 위하여 전국을 답사하고, 백두산을 일곱 번 올랐고, 수십 년 떠돌아다니며 대동여지도를 제작했다고 알려져 있지만, 과장된 이야기이다. 그에 대해 남겨진 기록들을 보면, 어디에도 그가 직접 국토를 답사하여서 실측했다는 내용이 없다. 그가 지리학을 좋아하여 널리 수집하였고, 전국을 답사하지 않고, 기존 지도를 수집하여서 집대성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조선은 지도와 지리지를 많이 편찬하여 행정을 편리하게 하려고 하였으므로, 그가 기존 지리학 자료들을 바탕으로 지도를 만들었다고 보는 견해가 많다.

김정호 사상과 역사지리 인식 배워보자.

그는 자신에 대한 글을 거의 남기지 않았는데, 그의 사상을 알 수 있는 글은 지도유설과 동여도지의 서문이다. 그는 지도와 지지는 서로 뗄 수 없는 관계라고 생각하였다. 지도는 천하의 형세를 알 수 있고, 지지는 역대 제도와 문물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김정호는 지역과 지리에 대하여 사람을 일깨우고, 당시에 필요한 새 길을 열었다. 지도를 목판에 새겨 넣어서, 대량으로 찍어 많은 사람들이 널리 쉽게 볼 수 있도록 하였다. 사람들은 자신의 목적지에 맞게 대동여지도를 편리하게 이용하였다.

 

조선 사회에서 지리학은 개인의 부와 명예를 보상을 받을 수 있는 학문은 아니었지만, 김정호는 실용적인 지도가 국가와 민생에 어떤 도움을 주는지 분명히 알고 있었다. 그는 정확한 지도는 반드시 국방을 위하여 필요하고, 산천의 상황과 경작하는 땅의 위치를 확인하면, 생산이 늘어나고 삶이 안정적이 되는데 큰 도움이 된다고 말하였다. 김정호는 새로운 가치를 위해 평생 연구에 몰두하여 백성들을 이롭게 한 위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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